나는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현역 입영대상자다. 동년배들보다 입대 시기가 많이 늦은 관계로, 주로 이미 군에 가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들어주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제대한 친구들도 하나 둘씩 생기고 있다.) 군생활을 아직 해보지 않은, 그리고 언젠가는 경험해야 할 입장에서, 경험담을 비롯한 그들의 이야기는 꽤 유익하게 듣고 있는 편이다.
(가령, 식사할 때 두 팔(팔꿈치)를 식탁 위에 올려놓아서는 안된다는 식의 이야기들. 모르고 가서 괜히 실행에 옮겼다간 저런 경우에 엄청나게 맞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니 맘에 들든 맘에 들지 않든 알아두는 편이 좋으리라.)
하지만 언젠가부터, 군에 있는 그들로부터 발신되는 이야기들이 나를 옭아매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나의 얘기가 그들로부터 넌지시 무시되기도 한다. 그건, 군대라는 이름 아래 나의 생각이나 내 생활이 주변화되어 버릴 때이다.
몇주 전 고등학교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는 올해 1월에 허리가 굉장히 아파 한달 동안 자리에 누워있다시피했던 일을 들려주었다. 그건 비유에 가까운 말이 아니었다. 외출도 삼가고 통원 치료도 했을 할만큼 심하다면 심한 통증이었다. 그런데 올해 제대한 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다 군대 가게 되어 있어. 허리 디스크라도, 몇 개월 이상 계속적으로 치료 받은 기록 없으면 웬만해서는 다 가." 그 친구는 그 날 예의 그 군대 얘기로 '안 갈 수 없다'는 말을 후렴구로 덧붙이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한켠으로 밀려오는 당황스러움. 물론 군대 안 갈 수 없다는거,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난 허리가 아파서 군대에 안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었던게 아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내 소식을 자연스레 얘기하고 싶었던거다.
통증 때문에 힘들었을 친구에게 많이 아팠냐는 한마디라도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차피 군대에 가야 하기 때문에, 군에 있었다면 별로 중요한 취급도 못 받았을 것이기 때문에, 군대 안의 의무시설은 정말 열악하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나의 통증이라는 기억과 느낌은 단순히 무시되어도 상관없다는걸까?
어떤 메세지들은, 도저히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상태의 나의 시간들을 존중해주지 않기도 한다. 한번은 휴가 나온 친구가 메신저에 로그인해서 안부를 묻고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군대에 어서 다녀오라]는 내용으로 이십분 정도나 반복적인 설교를 늘어놓고서야 나를 놓아준 적이 있다. 그는 이미 내가 군대에 늦게 가는 상황을 알고 있었고, 내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드물지 않게 들었던 친구였다. 난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나의 계획들 때문에, 때로는 어떤 상황들 때문에 이리저리 늦추어져서 가지 않고 있었던 것뿐이다.
나는 친구들이 특별히 악의가 있거나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무섭다. 군대 안에서 어떤 심리적인 압박을 받길래, 심지어는 제대하고 나서도 '군대'라는 지점에 다다르면 그렇게 히스테릭한 반응들을 보이고, 어색한 걱정으로 나를 무안하게 만드는지. 실은 이 포스트의 이야기들은 당사자들에게 한번씩 표현했어야 하는 말들이다. 사실 난 일단 그들에게 되돌아 올 '군대'라는 칼날이 두렵다.
어쩌면 내가 입대하고 또 제대하고 나서도, 그들과 같은 반응을 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무섭지 않은가.




덧글
히요 2004/12/04 21:36 # 답글
이런 생각들을 한번쯤 글로 옮겨 자신의 이름을 달아 남겨놓은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잔잔히 풀어 놓으신 진휘님은 제대후에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서진휘 2004/12/04 21:39 # 답글
히요 님 // 진심으로 그럴 수 있길 바라요.. ^^ 덧글 감사합니다.제가 얘기한 친구들도 한번쯤은 이런 생각 해봤으면 좋겠는데요.. (T^T)
G.스케빈져 2004/12/05 07:20 # 답글
루루루 나 몰래 포스팅이라니 못써 (탕탕) _~_훗훗... 나랑 그냥 북한 붕괴 및 대동아 삼분계를 통한 팍스 아메리카나 실현으로 병역제도 폐지를 추진하는 건 어때? (...어이)
서진휘 2004/12/05 10:58 # 답글
스케빈져 군 // 본승아- 그치만 네 꿈은 우주정복이었잖아...! (단호)
미친호랑이 2004/12/16 22:19 # 답글
히요님 블르그에서 타고 들어왔습니다. 저도 늦게 들어갔다고 갈굼도 많이 당하고 그랬었는데, 군대있는 동안 '내가 나이가 더 많은데.' 하면서 나이값을 찾아먹으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아버리면 주변의 이목을 끌게되어서 약간은 힘들 수도... 저랑 4달차이나던 사람이 유부남이었음.
미친호랑이 2004/12/16 22:23 # 답글
군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은 정체 혹은 퇴보되어가는데, 세상은 너무 빨리 발전을 하는것에 위기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 위기감은 빨리 제대를 하고 나도 저 대열에 동참해야 하는데라는 조급함을 안겨주고요.
아르 2004/12/18 02:32 # 답글
끝까지 스스로 의식하시고 자신의 변화에 민감하시길.